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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죽지 않아야 되었다・イエスは死ぬべきではなかった

Biblical Proof that Jesus was NOT Supposed to Die
예수님은 죽지 않아야 되었다라는 聖經的證據(성경적증거)
「イエスは死ぬべきではなかったという聖書の証拠」
(前半 英語+日本語10分)


▼前半(전반) 錄音朗讀用(녹음낭독용) 텍스트


メシアは死ぬべきではなかったという考えは、


舊約(旧約)聖書と新約聖書に確かな根拠があり、


同様にイエスの話からも死ぬべきではなかったと知ることができます。


イエスは死ぬべきではなかったというさらなる証拠を見る前に、


希望的な第一次路程から悲劇的な第二次路程への移行が


いつ起こり始めたかを知るべきです。


まず、私達はヨハネの福音書から、


クリストの宣教において四回の過越があったことを知ります。


これを知ると第一次から第二次への移行が


クリストの宣教活動の3年目あたりで起こり始めたことが分かります。


最初の約2年間、


イエスは差し迫った神の王国を力強く宣言していました。


「時は満ちた。神の国は近づいた」


「悔い改め福音を信じよ」


「悔い改めよ。天国は近づいた」


イエスが明らかにした福音は


クリストの死の埋葬ではなく、また、復活でもありません。


福音は王国の良い知らせであり、神が送られた方を信じるためです。


イエスは宣教活動の 3 年目に苦難の路程を話し始めます。


マタイ16章21節には


「その時からイエスは、弟子達に教え始めた。


イエスがエルサレムに行って多くの苦難を受ける。


長老達、祭司長、律法学者達から。


そして殺され三日目によみがえられることを話し始めた」


弟子達はその瞬間まで十字架について聞いていませんでした。


クリストが苦しみの道を歩むべきと言われた時の


弟子達の混乱した反応からも使命が変化したと知ることができます。


引用します。「弟子達はこのことを何も理解していなかった。


その意味は弟子達には隠され、


弟子達は、イエスが何を言っているのか分からなかった」


この言葉は他の聖句にも記録されています。


さらに、弟子達がイエスの昇天の直前に尋ねたのです。


「主よ、イスラエルの国を復興されるのは、この時なのですか?」


この質問は弟子達が物理的な神の王国を期待していた証拠です。


イエスと共にこの三年間、過ごしてきた弟子達は、


イエスが王国を復興してくれるとなぜ弟子達は期待したのでしょうか。


最初からカルバリの苦難の話を聞いていたとしたら、


弟子達は、メシアの使命を誤解するほど愚かではなかったはずです。


弟子達は神の子の貴重な御言葉を3年間毎日聞いていたのです。


したがってクリストの語った言葉は、


メシアの使命が変化した証拠です。


イスラエルがクリストと一つになることが失敗し、


クリストはイスラエルの為に泣きます。


「ああ、エルサレム、エルサレム。


預言者達を殺し、遣(つか)わされた人達を石で打ち殺す者よ。


私はあなた達を幾たび集めようとしたことか。


めんどりが翼の下にそのひなを集めるように、


それだのに、おまえ達は応じなかった」


エルサレムの不服従に対するイエスの嘆きは、


神の慈悲深い呼びかけに応えてほしいというイエスの願いを示します。


イエスを十字架につけることが神の願いではありません。


イエスは、ご自身を含む神の預言者を殺して来た


イスラエルのいつものパターンは天の御心(みこころ)に逆らうことであると述べています。


イスラエルの頑固さにより、


神の無条件の愛にもかかわらず、


神が御自身の子女達を集め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雌鶏(めんどり)がひなを集めるようとしても集められないのです。


イエスは、イスラエルが「見捨てられ」ると宣告され、


ルカでは「見捨てられ」、マタイでは「荒れ果てる」と言われました。


この言葉はイザヤ書62章の預言とまったく矛盾しています。


「あなたは栄光の冠(かんむり)となり、神の手の中の王冠となるでしょう。


あなたはもはや見捨てられることはなく、


あなたの土地ももはや放棄されることはない」


イエスは涙を流しながら、聴衆にはっきりと語られました。


イスラエルが使命を果たさなかった。


イスラエルの黄金時代をもたらす方(かた)を受け入れるべきであった。


したがって、イスラエルは、「見捨てられ」、荒れ果てることになります。


イスラエルの救い主を十字架につけたからです。


イエスが泣いた理由は、


イエスの初臨において、物質的な王国が創建されず、


神の本来の願いを成すためにイエスが再臨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です。


このように、イエスがエルサレムに関して悲しみながら発言したことは、


イスラエルを通しては神の御心が達成できないことを示しています。


神の摂理の変化を嘆くのはイエスだけではありません。


ステパノは最高法院の聴衆に向かい立ち、


ユダヤ人の指導者達をも義憤をもってステパノは非難しました。「強情な人達よ、


あなた達は、あなた達の先祖と同じく聖霊に逆らっている。


あなた達が迫害しなかった預言者がいただろうか?


彼らは義人の到来を予言した者達さえも殺害した。


そして今、あなた達は主を裏切り殺した。


あなた達は御使たちによって伝えられた
律法を受けたのに、


しかし、それを守ることをしなかった」(使徒7:51-53)


ユダヤ人の行動を彼らの罪深い先祖達にたとえながら、


彼らを救うために遣(つか)わされた義人を裏切ったと


ステパノは主張しました。



*************



메시아는 죽으면 안되었다는 생각은


舊約(구약)과 新約聖經(신약성경)에
확실한 근거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예수의 이야기에서도
죽지 말아야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證據(증거)를 보기 前(전)에


우리는 우선 希望的(희망적)인
1次(차)路程(노정)에서


悲劇的(비극적)인 2차 路程(노정)으로의 轉換(전환)이


언제 일어나기 시작했는가 알아야 합니다.まず、私達は


우선 우리는 요한 福音書(복음서)에서


네번 유월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これを知ると第一次から


1차부터 2차로의 轉換(전환)은


3년째에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의 약2년간,


예수님은 임박한 하나님의 王國(왕국)을 강력하게 宣言(선언)했습니다.


「때가 다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


「悔改(회개)하고 福音(복음)을 믿어라」


「悔改(회개)하라. 天國(천국)은 다가왔다」


예수께서 밝힌 福音(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니라,또한 復活(부활)도 아닙니다.


福音(복음)은 王國(왕국)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선교활동의 3년째에


苦難(고난)의 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십니다.


馬太福音(마태복음) 16:21 에는


「그 때부터 예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서 많은 苦難(고난)을 받는다.


長老(장로)들, 祭司長(제사장), 律法學者(율법학자)들로부터.


그리고 죽이고 3일째에 復活(부활)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弟子(제자)들은 十字架(십자가)에 대해서는 그 瞬間(순간)까지 듣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고통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 후 弟子(제자)들은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명의 변화가 있었던 겁니다.


인용:「弟子(제자)들은 이것을 아무것도 이해 하지 못했다」


그 의미는 弟子(제자)들에게 숨겨져


弟子(제자)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


弟子(제자)들이 예수의 昇天(승천) 直前(직전)에 물었습니다.


主여, 이스라엘의 나라를 復興(부흥)시키는 것은 이때입니까?


이 질문은 弟子(제자)들이 보이는


하나님의 王國(왕국)을 기대했던 증거입니다.


왜 弟子(제자)들은 예수께서 王國(왕국)을 復興(부흥)시켜 주실 것을 기대했을까요?


처음부터 苦難(고난)의 길을 걸어가실 것을 알고 있었으면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귀한 말씀을 3년간 매일 듣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苦難(고난)의 길을 가시겠다는 말씀은 메시아의 사명이 달라졌다는 證據(증거)입니다.


이스라엘이 크리스토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위해 울었습니다.


「아, 예루살렘, 예루살렘,


先知者(선지자)들을 죽이는 사람들.


나는 너희들을 몇 번 모으려고 했는가?


암탉이 날개 아래에 그 병아리를 모으는 것처럼,


그렇지만 너희들은 應(응)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不順從(불순종)에 대한 예수님의 슬픔은


하나님의 부름에 應(응)해달라는 예수의 소원을 나타냅니다. 그 소원은 十字架(십자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先知者(선지자)들을


죽이로 왔던 것은 하늘의 뜻에 어긋난 일이라고 말씁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頑固(완고)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子女(자녀)들을 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 모으려고 해도 모일 수 없는 것입니다.


모으실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버려질 것으로
宣告하시고


버림받고 거칠어진다고 하셨습니다.(누가 복음, 마태 복음)


이 말은 이사야서 62장의 예언과 완전히 모순됩니다.


「 영광의 왕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버림받지 않고,


당신의 땅은 더 이상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며 聽衆(청중)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명을 다하는 것에 실패했다.


黃金時代(황금시대)를 가져오실 분을 이스라엘이 받아들여야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버려지고」「荒廢(황폐)」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救主(구주)를 十字架(십자가)에 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울었던 이유는


예수의 初臨(초림)에서 보이는 王國(왕국)을 創建(창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예수는 再臨(재림)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슬퍼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실수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변화를 한탄하는 사람은 예수만이 아닙니다.


스테파노는 最高法院(최고법원)의 聽衆(청중)을 향해 유대人 指導者
(지도자)들을 非難(비난)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祖上(조상)과 같이
恒常(항상) 聖靈(성령)을 거스르는도다


祖上(조상)들이


先知者(선지자)들中(중)의 누구를 迫害(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義人(의인)이 오시리라 豫告(예고)한 者(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義人(의인)을 잡아 준 者(자)요 殺人(살인)한
者(자)가 되나니


너희는 天使(천사)가 傳(전)한 律法(율법)을 받고도


律法(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유대인의 言行(언행)을 그들의 罪(죄) 많은 조상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을 救援(구원)하기 위해


보내온 義人(의인)을 背信(배신)했다고 스테파노는 主張(주장)했습니다.


……………


Biblical Proof that Jesus was NOT Supposed to Die
예수님은 죽지 않아야 되었다라는 聖經的證據(성경적증거)
「イエスは死ぬべきではなかったという聖書の証拠」
(後半 英語+日本語 8分)



▼後半(후반) 錄音朗讀用(녹음낭독용) 텍스트


クリストを十字架につけたことを「背信」そして「殺人」とステパノが言っているのに、


크리스토의 十字架(십자가)가 「배신」그리고「살인)」이라고


十字架で死ぬことが世の始めからの神の御旨だと言えるのでしょうか。


스테파노가 말했는데 왜 그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ステパノ(英語:スティーブン)はユダヤの指導者達にはっきりと述べています。


스테파노는 유대인 指導者(지도자)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預言者達を殺して来たユダヤ人の行動が神の願いに反していたと.


先知者(선지자)들을 죽여 온 유대人의 행동이 하나님의 소원을 어긋난 일이라고 했습니다.


イエスを殺した不条理なパリサイ人(びと)に対するステパノの怒りは、


예수를 죽인 不條理(부조리)한 바리새人(인)에 대한 스테파노의 憤怒(분노)는


本来はイエスが殺されてはならなかったことを示しています。


원래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시면 안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もしイエスを十字架につけることは、神の意志を実行しただけというなら、


만일 예수님을 十字架(십자가)에 못박기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ステパノは、神の御意思(ごいし)が達成されたと


스테파노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었다고


なぜ、賛美の喜び声を叫ば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


讚揚(찬양)과 기쁨을 왜 외치지 않았습니까?


歴史上、神の意志が達成された時代がかつてあったでしょうか。


歷史上(역사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時代(시대)가 있었을까요?


神の預言者や聖徒達を拒絶したり殺すことによって。


하나님의 先知者(선지자)와 聖徒(성도)들을 拒絶(거절)하거나 죽임으로써.


したがって、ステパノによるイスラエル人に対する非難は、


따라서 스테파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非難(비난)한 것은


イエスがユダヤ人の手によって「裏切られ、殺される」はずではなかっことを意味します。


예수께서 유대人의 손으로「背信(배신)」당하고 말아야 되고 죽임」을 당하지 말아야 된 것을 의미합니다.


神はイスラエルを通して地上にご自身の王国を始めたいと願っておられました。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地上王國(지상왕국)을 시작하길 원하셨습니다.


イスラエルはクリストと一つになるはずでした。


이스라엘은 크리스토와 하나가 돼야 했습니다.


伝統的なキリスト教神学では、イエスのゲツセマネの嘆願である


傳統的(전통적)인 基督敎神學(기독교신학)은 예수의 겟세마네의 歎願(탄원)인


「できればこの杯を私から過ぎ去らせてください」という言葉は、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말은


イエスの人間性が現れたのであると解釈して来ました。


예수의 人間性(인간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解釋(해석)해 왔습니다.


この説明は、1 つの主要な理由により間違っています。


이 說明(설명)은 한 가지 중요한 理由(이유)로 잘못되었습니다.


イエスの唯一の使命が、もし十字架であるなら、


예수의 唯一(유일)한 使命(사명)이 만일 十字架(십자가)라면,


イエスを売って十字架に送ったペテロはイエスの使命を助けたはずなのに


예수를 팔고 十字架(십자가)에 보낸 베드로는 예수의 使命(사명)成就(성취)를 도왔을 텐데


イエスはペテロをサタンと呼び責めました。引用します。


예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あなたは神のことを思わないで、人のことを思っている」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마태 16:23)


イエスの「父よ、この杯(はい)を私から取り除いて下さい」という祈りについて、


예수의「이 盞(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에 대해서


この言葉を基督教神学では、「イエスの信仰の揺らぎの結果である」と言い放ちます。


傳統的(전통적)인 基督敎神學(기독교신학)은 예수의 人間性(인간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解釋(해석)해 왔습니다.


もしそうなら、その後の死を恐れなかったクリスチャン殉教者は


만약에 그렇다면 죽음의 길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크리스찬 殉敎者(순교자)들은皆、


神と一体であるキリストよりも大きな愛と信仰を持っていたと言えることになります。


하나님과 하나가 되신 크리스토보다 더 큰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クリストが神の摂理とイスラエルの民を憂慮されておられ、


크리스토를 죽인 이스라엘의 고난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それを動機として、そのような祈りがされたと考えることが一貫性があります。


그러한 祈禱(기도)를 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一貫性(일관성)이 있습니다.


イエスの「この杯を私から取り除いて下さい」という祈りが、イエスの人間性の表れであると解釈することは、


예수께서「이 盞(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하고 하신 祈禱(기도)가


十字架で死ぬことが堕落した人類を救う唯一の選択肢であるなら、理解できない解釈です。


예수의 人間性(인간성)이 나타난 祈禱(기도)라고 解釋(해석)하는 것은 예수의 使命(사명)이 十字架(십자가)의 죽음이 일 경우는 理解(이해)할 수 없는 解釋(해석)입니다.


旧約聖書と新約聖書の両方が物質的な王国の創建を裏付けています。


舊約聖經(구약성경)과 新約聖經(신약성경)이 物質的(물질적)인 王國
(왕국)의 創建(창건)을 뒷받침합니다.


神のメシアに対する主な願いは、


나님의 메시아에 대한 主(주)된 素望(소망)은


全世界に主権をもたらすことであったと多くの聖句が示しています。


全 世界(전세계)에 主權(주권)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고 많은 聖句(성구)가 보여줍니다.


これまで述べてきたイエスの言葉と行動を根拠として考えるなら、


예수님의 말씀과 行動(행동)을 根據(근거)로 생각한다면,


イエスが神の本来の御旨の成就の為に、


예수께서 하나님의 본래의 뜻을 成就(성취)하기 위하여


「もう少し生きる時間を与えて下さい」と神に懇願したと考える方(ほう)が、


「좀 더 살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懇請(간청)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クリストの絶対的な信仰を侮辱(ぶじょく)しない唯一の説明になります。


크리스토의 絶對信仰(절대신앙)을 侮辱(모욕)하지 않는 唯一(유일)한 說明(설명)이 됩니다.


イエスの嘆願は、地上の王国の為の天の父の熱烈な願いを成就しようとする忠実な態度から出た祈禱でした。


예수의 歎願(탄원)은 하나님의 뜻을 地上에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だからイエスは必死に願ったのです。


그래서 예수께서는 必死的(필사적)으로 바라셨습니다.


「この杯を私から過ぎ去らせて下さい」


「이 盞(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血の汗にまみれながら。


예수께서 피투성이 되시면서


イエスは一度ではなく三度に分けて神に必死に願われました。


예수님은 한 번이 아니라 세번 하나님께 必死的(필사적)으로 歎願(탄원)하셨습니다.


しかし、ユダヤ人の頑固さのせいで、


그러나 유대人의 頑固(완고)함 때문에


イエスの時代内に御旨を実現できないことを神は分かられました。


예수의 時代(시대)에 그 뜻을 實現(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そのように説明すれば、妥当性があります。


그렇게 說明(설명)하면 妥當性(타당성)이 있습니다.


つまり、十字架の運命は本来のクリストの使命ではないということ。


卽(즉), 十字架(십자가)의 죽음의 運命(운명)은 本來(본래)의 크리스토의 使命(사명)이 아니라는 것.


旧約聖書と新約聖書の膨大(ぼうだい)な証拠は


舊約聖經(구약성경)과 新約聖經(신약성경)의 엄청난 證據(증거)는


クリストの運命が十字架によるものではなかったことを示します。


크리스토의 運命(운명)이 十字架(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歴史と絡(から)み合ったキリスト教神学の側面を深く掘り下げると、


歷史(역사)와 얽힌 基督敎神學(기독교신학)을 깊이 파고들면


神がイスラエルに対し継続的な祝福を与えようとされた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祝福(축복)을 주시려거 했던 것을 알수 있고


希望的な第一次路程から悲劇的な第二次十字架路程へのこの使命の変化が


希望的(희망적)인 一次路程(노일차정)에서 悲劇的(비극적)인 二次十字架路程(이차십자가노정)로에 이 使命(사명)의變化(변화)가 歷史(역사)에 큰 影響(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고,


今まで続く復帰摂理歴史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ことを私達は知ることができます。


그리고 지금까지의 復歸攝理(복귀섭리)에 影響(영향)을 준 것입니다.


次にお会いするときまであなたのご家族が素晴らしい祝福の日を過ごせるよう願います。


당신의 家族(가족)이 훌륭한 祝福(축복)의 날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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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字架より叫び聞こゆ
(日本語3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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